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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재선에 성공 '서울시민만 보고 가겠다.':엔티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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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재선에 성공 '서울시민만 보고 가겠다.'

정몽준 후보, '패배' 인정-차기 대권주자 이미지 훼손 많을 듯

이서형 | 기사입력 2014/06/05 [06:16]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재선에 성공 '서울시민만 보고 가겠다.'

정몽준 후보, '패배' 인정-차기 대권주자 이미지 훼손 많을 듯

이서형 | 입력 : 2014/06/05 [06:16]

6.4지방선거의 최대 관심지였던 서울시장에 새정치민주연합 박원순(58) 후보가 당선됐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강력한 대권주자였던 정몽준 후보를 여유있게 따돌리면서 서울시장에 재선하게 된 박 신임 서울시장은 수도 서울시를 '그랜드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실시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대선주자' 반열에 성큼 올라서면서 향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구심점이 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두 번의 대선 도전과 7선 국회의원으로 차기 대권주자 가운데 수위를 차지했던 후보의 입지는 이번 선거의 패배로 당분간 몸을 움츠릴 수 밖에 처지에 빠 됐다.

박 당선자는 차기 대선 출마를 부인했지만 1000만 시민이 두 번이나 '선택한 서울시장이라는 점만으로 대권 도전은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박 상선자는 올해 신년사를 통해 '수가재주 역가복주(水可載舟 亦可覆舟58'를 인용했다. 그러면서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엎을 수도 있다. 물은 시민들이다"라고 말했다.

박 당선자는 늦깎이로 대학에 들어갔으며 그해 5월, 시위에 참여하면서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4개월의 수감 기간에 읽은 루돌프 폰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은 그를 법률가의 길로 이끌어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계기가 됐다. 1년 만에 검사복을 벗고 인권
변호사로 나선 박 당선자는 권인숙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 변론에 항상 모습을 드러냈다..

1990년대 들어 박 당선자는 시민운동가로 변신했다. 1994년 참여연대를 결성해 소액주주 권리 찾기, 예산정보 공개, 총선 낙선·낙천 운동을 주도했다. 2002년에는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를 설립했고, 2006년엔 희망제작소를 만들어 새로운 사회를 디자인하겠다고 나섰다.

박 당선자는 2009년, 자신에 대한 국가정보원 사찰 문제를 계기로 정치의 길로 들어섰고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당시 5%대 지지율도 동반상승해 50% 지지율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아름다운 양보'를 등에 업고 첫 무소속 서울시장 당선이라는 이변을 일궈냈다.

박 당선자는 당선 소감에서 "정직하게 땀 흘려 일어나는 시민 모두의 승리"라며 "새로운 시대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겠다"고 했다. 소셜 디자이너’(사회를 디자인하는 사람)로 사회 변혁을 꿈꾸던 그는 이제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 변혁의 디자이너로 가는 또 다른 도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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