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복동 할머니 영결식, 나비처럼 훨훨 날아 평화로운 세상으로~

'우리가 위로금 받으려고 이렇게 싸웠나. 1000억을 준다 해도 받을 수 없다'
뉴스일자: 2019년02월02일 01시05분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이자 여성인권·평화운동가인 김복동 할머니(94)의 발인이 1일 오전 거행됐다.

이날 고인의 영결식은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엄수됐고 고인의 마지막 길을 추모의 노란 나비 물결로 뒤덮였다.

추모객들은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신촌대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모여 고인에게 헌화하고 큰 절을 올리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다른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도 이른 시간에 나와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오전 630분께, 영결식장에서 고인을 모신 관이 나왔고 고인과 연을 쌓은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가 고인의 영정과 위패를 들고 앞장섰다.

그 뒤로 이용수 할머니와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 등 추모객 40여명이 뒤를 따랐다. 고인의 관을 본 추모객들은 울음을 참지 못했다.

윤 대표는 관에 매직펜으로 훨훨 날아 평화로운 세상에서 길이길이 행복을 누리소서라고 적었다.고인의 관을 실은 운구차는 고인이 생전에 머물렀던 서울 마포구 평화의 우리집으로 향했다.

경찰차와 경찰 오토바이가 교통을 통제하는 가운데 양팔을 벌리고 환한 표정을 짓는 고인의 사진을 차 앞에 내달은 운구차는 오전 75분께, ‘평화의 우리집앞에 도착했다.

발인식 내내 눈물을 참았던 추모객들은 집 앞에서 이내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평화의 우리집으로 고인의 영정이 들어가자 고인과 함께 생활했던 길원옥 할머니는 영정을 양손으로 어루만지면서 왜 이렇게 빨리 가셨어. 이렇게 빨리 안 갔어도 좋은데라면서 먼저 좋은 데 가서 편안히 계세요. 나도 이따가 갈게요라고 말을 건넸다.

고인이 생전에 지냈던 방으로 들어 선 윤 대표가 방 안의 장롱 앞에서 할머니 저 외출복 수요시위 갈 때 입었던 저 옷 어떡하지. 그대로 잘 둘게. 할머니라고 말하자 이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울음을 참지 못했다.


영결식에는 추모객 10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는데, 윤 대표는 김복동 할머니를 추모하고 뒤따르고자 결심하는 수많은 나비가 날갯짓했던 지난 닷새였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추모객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윤 대표는 마침내 죽음도 이겨내고 바람을 일으켜 이 땅의 평화로 할머니는 다시 살아나셨다는 느낌을 받는다다음 주 수요일 김복동 할머니는 이곳(수요시위장소)에 앉아 계실 것이다. 평화와 인권이 필요한 곳에 준엄한 목소리로, 격려의 목소리로 우리와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성 극단 고래 대표는 추모사에서 피해자에 머물지 않고 여성인권운동가로 전 세계를 누비시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살아오신 삶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잡아줬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서울광장에서는 정의연과 시민 1000여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김 할머니를 위한 추모 행진을 시작했다.

고인의 영정사진을 든 윤홍조 대표가 선두에 서고 그 뒤로 운구차와 현수막, 만장 94개를 든 시민들이 뒤따랐다. 만장을 들지 않은 시민들은 노란색 나비 모양의 종이가 달린 막대를 들었다.

현수막에는 김복동님 나비 되어 훨훨 날으소서라고 적혔고 만장에는 김복동 우리의 영웅, 희망, 마마’, ‘일본은 조선학교 처벌 마라’, ‘전쟁 없는 통일된 나라’, ‘일본군 성노예 책임자 처벌’, ‘전시 성폭력 없는 세상등이 적혔다.

할머니 사랑합니다. 큰 꿈을 이뤄 드리겠습니다라는 정의연 관계자의 외침과 함께 행진이 시작됐고, 시민들은 함성을 질렀다.

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방송 차에서는 하루빨리 해결 지으라고 일본 정부에 전하세요. 알겠습니까”, “우리가 위로금 받으려고 이렇게 싸웠나. 1000억을 준다 해도 받을 수 없다. 하루빨리 사죄하라를 외치는 고인의 생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행진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을 지나 오전 950분께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도착했다.

김복동 할머니 기억하겠습니다. 할머니 꿈 반드시 이루겠습니다라는 정의연 관계자의 발언이 나오자 참가자들은 다시 옛 일본대사관을 향해 함성을 질렀다. 이어 일본은 공식 사과하라”, “법적 배상을 이행하라구호를 외쳤다.


헌화를 마지막으로 영결식을 마친 뒤 운구차는 천안 망향의 동산 장지로 떠났다.

<이창재 기자/micky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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