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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3월 14일] 1991년 대구 낙동강 페놀 유출 사태 발생.

김종현 | 기사입력 2009/03/14 [02:50]

<오늘의 역사> [3월 14일] 1991년 대구 낙동강 페놀 유출 사태 발생.

김종현 | 입력 : 2009/03/14 [02:50]

1991년 3월 14일 밤 10시에서 3월 15일 새벽 6시 사이, 구미 소재 두산전자 공장에서 페놀 원액이 낙동강으로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 달 뒤인 4월 22일에도 같은 공장에서 또 다시 페놀 원액이 유출되었다.

페놀은 페닐기에 하이드록시기가 결합한 방향족 화합물로서 무색의 결정으로 향긋한 냄새가 난다. 방향족 탄화수소에 하이드록시기가 결합한 방향족 화합물 모두를 페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에 잘 녹는 수용성 물질로서 사용한 페놀을 안전하게 처리하지 않을 경우 수질오염을 유발시킬 수 있는 물질이다.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자이클론B처럼 안락사용으로 페놀을 사용했을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살균제, 구강 마취제, 독감 치료제로 쓰이기도 했고, 아스피린과 같은 약품 제조 공정과 제초제 원료로도 사용되었다. 레오 베이클랜드는 페놀을 이용하여 최초의 플라스틱인 베이클라이트를 합성한 바 있다. 페놀은 인쇄회로기판(PCB)의 제조 공정에 사용된다.

두산전자가 바로 인쇄회로기판 제조 전문 기업으로서 현재도 이 사업을 계속 하고 있다. 두산전자는 1974년 한국오크공업(주)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후 1985년에 두산전자(주)로 상호를 변경했다. 1998년에는 코오롱전자를 인수, 합병하여 인쇄회로용 동방적층판 전문 제조업체로 거듭났다. 1998년 IMF 이후 실시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두산그룹은 9개 계열사를 통합하여 두산전자BG로 재탄생시켰다. 사건이 발생했던 구미 공장은 현재도 가동 중이며, 두산전자BG 웹사이트에서는 기업 역사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사건 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당시 두산전자는 사건 발생 4개월 전부터 페놀 원액을 조금씩 몰래 낙동강에 방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날, 저장탱크에서 공장으로 연결되는 파이프에서 약 30톤의 페놀 원액이 옥계천으로 방류되었다. 한 번 강으로 흘러들어간 페놀 원액은 옥계천을 따라 대구시 상수원인 다사취수장으로 흘러들어갔다. 이 물이 그대로 다시 대구 시민들의 가정으로 공급되었고, 시민들은 수도에서 나는 악취때문에 도저히 수돗물을 사용할 수 없었다.

취사장측은 악취의 원인을 규명하지도 못하고 페놀 소독에 사용해서는 안되는 염소를 다량투입하여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켰다. 페놀 자체는 악취가 아니라 향긋한 냄새를 풍기지만, 정수장에서 사용하는 염소와 화학 작용을 일으켜 클로로페놀로 변하면서 악취를 유발했던 것이다. 그 사이 낙동강을 오염시킨 페놀은 낙동강을 따라 부산과 마산까지 흘러가 경상남북도를 페놀 공포로 몰아넣었다.

사건이 밝혀지자 공무원 및 두산전자 관계자 13명이 구속되고, 기타 공무원 11명이 체포되었다. 두산전자는 30일 간 조업 중단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상공부는 수출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20일만에 조업 재개를 허가한다.

그러나 조업 재개 후 5일만인 4월 22일에 두산전자는 4월 22일에 또 다시 페놀 원액 유출 사건을 일으켰다. 1차 사건 후 박용곤 두산회장과 두산그룹은 시설을 교체하여 두 번 다시 그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한때의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말뿐이었다. 결국 1차와 2차에 걸친 유출 사건으로 인해 박용곤 당시 두산 그룹 회장이 물러나고 허남훈 환경처장, 한수생 차관 등이 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되었다.

이 사건은 고도 성장 과정에서 무시되었던 환경과 기업 윤리를 새삼 다시 일깨웠다는 점에서 역설을 낳았다. 이 사건으로 혜택을 입은 업종도 있다. 생수 사업이다.  내국인 대상 생수 판매가 합법화된 것은 1차 유출 사고로부터 5개월 뒤였던 것이다. 수돗물과 수질 관리에 대한 불신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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